정통신앙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이며, 정통신학은 칼빈주의, 개혁주의, 보수주의 신학입니다. 총회신학교가 지향하는 신앙 원리와 신학 사상을 소개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 성경 중심의 신앙, 교회 중심의 신앙
칼빈주의 신학, 개혁주의 신학, 보수주의 신학
본 총회신학교가 지향하는 주요 신앙은 과거 올바른 신앙인들이 추구하고 지켜온 정통신앙(Orthodoxy Faith)을 말하며,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핵심은 하나님 절대주권 신앙(Faith of The absolute sovereignty of God)이며, 이 근본적인 근거는 성경(Faith of The Scripture)에 입각한 올바른 신앙을 말한다. 또한 이의 근본적인 활동은 교회(Faith of The Church)가 그 중심이 되는 신앙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신앙은, 바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인 것이다.
이 정통신앙을 구체적으로 세분하여 서술하면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먼저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인 면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어야 한다. 이것은 곧 인간 중심의 알미니안적 사고를 경계하는 것은 물론이요, 동시에 자유주의적인 인간 중심의 신학과 철학을 경계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올바른 신앙의 소유자는 모든 제반의 사상이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은 물론이요, 결과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더 중요한 것은 과정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신학 사상이다.
이것은 결국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께 절대 주권’을 돌려 드리는 것이다. 모든 것의 결정과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시인하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살며, 그 분을 위하여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칼빈주의의 5대 교리를 바탕으로 한, 오직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기초로 한 신학 사상이며, 인간의 전적 타락을 전제한 신학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이 없거나 부족하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상을 검증의 첫째 단계로 보면 되는 것이다.
이것의 반대 개념은 인간 중심의 신앙에서 찾게 된다.
다음은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와 방편이 성경적인가? 아니면 비성경적인가? 를 보아야 한다. 즉 인간 이성과 경험이 우위인가? 아니면 성경의 말씀이 우위인가? 를 보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는 체험, 이성, 합리성과 논리를 앞세우는데 우리의 경계를 요하며, 이는 곧 체험 일변도의 신비주의나, 이성과 논리 제일의 자유주의 신앙을 경계한다.
바른 신학의 소유자는 오직 성경만을 따른다. 하지만 이단들의 초점은 자기 이성과 자기 주관적 이론이 개입된 신학과 교리를 펼친다. 이러한 사고는 근본적으로 비성경중심이다.
그들은 흔히 자기를 성경중심이라고 부추겨 세운다. 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전혀 다르게 인간 중심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가령 어떤 성경을 해석하거나 적용함에 있어서, 신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 하지 않으면, 거기에는 인간 이성이 개입될 소지가 많은 것이다. 또한 모두가 전통적으로 말해온 교리나 해석과 사상이 아닌, 전혀 생소한 학문과 사상과 방법에도 인간 이성이 개입할 소지가 다분히 많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것의 반대 개념은 체험 중심의 신앙에서 찾게 된다.
다음은 활동과 생활의 본거지가 교회인가? 아니면 세상인가? 이다.
참된 신앙인은 생활의 주된 본거지가 항상 교회이어야 한다.
이 말은 첫째, 교회에서의 하나님께의 예배와 거룩한 교제, 성도의 사귐과 봉사가 삶의 주류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중심 외에 그 어떤 것도 신앙인에게 주(柱, 기둥)와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흔히 삶의 행복, 부의 증가, 소유의 확장, 기쁨과 쾌락의 삶 등등이 인간의 삶의 주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만, 참 신앙인은 교회에서 하나님께의 예배와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중심한 삶을 살게 되면, 부와 기쁨과 행복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부여 주신다.
둘째, 교회 생활이 일반생활에 연결되어야 한다.
이 교회 중심이란 말의 의미를 확장하여 설명하면, 우리 생활의 중심이 교회생활의 연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어느 장소에 있든지 항상 교회에서의 예배와 섬김과 봉사의 삶이 주를 이루어야 한다. 즉 신앙인이 직장과 사회와 가정에 있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신앙인(코람데오의 신앙)으로 나타나 있어야 하며, 그러므로 그는 어디에 있든지 교회에서의 예배자와 봉사자의 거룩한 삶이, 생활에서도 계속 연결되어야 하고, 그로 말미암은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한다.
이는 성경을 말하면서 세속화에 묻혀 사는 것과, 성경 보다는 혼합화를 앞세우는 것을 경계하는 신앙이다. 이는 곧 향락과 쾌락 위주의 세속주의나, 신학과 사상의 연합이라는 명목으로 일어나는 혼합주의의 신앙을 경계하는 것이다.
오늘날 보수적인 교회의 맹점은 바로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은 잘 되지만 이 부분, 즉 교회 중심은 잘 이행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전자의 2가지는 이론이라 할 수 있지만, 후자의 교회 중심은 실천의 문제이므로 더욱 실천이 어렵다. 좋은 믿음을 가진 신앙인도 교회 중심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참 바람직한 신앙인은 교회 중심의 생활을 잘 감당하게 된다.
이것의 반대 개념은 세속 중심의 신앙에서 찾게 된다.
본 총회신학교가 지향하는 주요 신학 사상은 과거 올바른 신앙 선조들이 추구하고 지켜온 정통신학(Orthodoxy Theology)을 말하며,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핵심은 칼빈이 집대성한 사상의 칼빈주의(Calvinism)와,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개혁주의(Reformed)와 정통을 보수 유지해 온 신앙선진들의 보수주의(Conservatism)가 그 중심이 되는 신앙인 것이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신학이 바로 칼빈주의, 개혁주의, 보수주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이 정통신학을 구체적으로 세분하여 서술하면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정통신학은 무엇인가? ‘정통’이란 영어로는 ‘오더독시’(Orthodoxy)이다. 이 말은 바른(正) 계통(統)이라는 뜻이다. 정통주의라고 할 때는 ‘리지티미즘’(legitimism)이다. 즉 신학적으로 성경의 바른 계통을 이어 오는 것을 말한다.
정통신학은 어떤 ‘특이한 신학 사상’이라기보다는 ‘성경적인 신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신학사상과 신앙을 그대로 바르게 전수받고, 잘 이어받아, 이를 다시 후손에게 잘 전달하여, 그 후손들도 그 바른 교리들을 전통적으로 이어가는 신앙을 일컫는 말이다. 이 정통신학을 구체적으로 세분하여 서술하면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칼빈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칼빈주의’라는 사전적인 뜻은 ‘16세기 프랑스의 종교 개혁자 칼빈에게서 발단한 종교사상’으로서, 칼빈(John Calvin)이라는 신학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신학자 칼빈의 추종 세력으로만 보는 것은 극히 부분적으로 보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의 이론을 후대가 더 계승 발전시킨 신학사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영어로는 ‘칼비니즘(Calvinism)’으로 ‘존 칼빈에게서 유래된 것’을 뜻한다.
결국 이 말은 존 칼빈이 성경으로부터 인출한 올바른 신학사상이 칼빈주의인 것이다.
흔히 ‘칼빈’ 하면 하나님에 의한 인간 운명의 예정을 강조한 신학자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부분적인 견해일 뿐이다. 그의 신학 사상을 몇 가지 용어나 구절로 표현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굳이 한다면, 오히려 칼빈은 하나님과 성경을 강조한 신학 사상의 신학자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명칭은 칼빈이 새롭게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과거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인간 중심의 잘못된 성경에 대한 태도로부터 떠나, 하나님과 성경 중심의 신앙과 신학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신학 사상으로 ‘개혁주의’라는 명칭과 유기적, 교대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것의 반대 개념은 알미니안주의 신학사상에서 찾게 된다.
아르미니우스가 주장하는 이 신학 사상은 인간중심, 세속중심(환경, 삶의 현장)을 주장하는 신학사상을 말한다. 이러한 것에서 떠나는 것이 칼빈주의 사상이다.
개혁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개혁주의’라는 사전적인 뜻은 ‘새로 뜯어 고침’이라는 ‘개혁’(改革)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잘못된 것을 새롭게 고치는 신학 사상’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리폼드’(Reformed)로서 ‘개량된’, ‘개심한’ 것을 뜻한다.
결국 이 말은 과거나 현재에 잘못된 사상이나 신학과 신앙을 새롭게 개량하는 신학사상이 개혁주의인 것이다.
이 명칭은 과거적 의미로 보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성경에 대한 태도로부터 새롭게 고쳐, 성경에 대한 올바른 태도로 돌아가는 사상을 말한다. 현재적 의미로는 점점 성경에서 벗어나, 우로는 신비주의 사상으로 흐르는 사상을 경계하며, 좌로는 인본주의로 흐르는 신앙과 신학을 경계하는 신학 사상이다. 이는 본성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점점 타락하여 하나님과 멀어지니, 항상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모든 사람과 특히 신앙인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개혁은 계속되어져야 한다.
이것의 반대 개념은 비성경적인 사상(로마 카톨릭교회와 이성주의 사상)에서 찾게 된다.
로마 카톨릭 교회들(교황중심)의 신학사상은 성경보다 인간인 교황의 지시나 규율과 이들이 만들어 낸 형식적인 규범과 신앙과 신학사상을 우위에 두고 있다. 개혁주의는 이러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에서 떠나는 것이다.
보수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보수주의’라는 사전적인 뜻은 ‘새로운 것을 반대하고 재래의 풍습과 전통을 중히 여기어 유지 보존하여 지키는 것’의 ‘보수’(保守)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정통적인 신앙 유산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는 말이다. 영어로는 ‘컨서버티즘’(Conservatism)로서 ‘보호, 관리, 보존, 유지’를 뜻한다. 결국 이 말은 신앙의 선진으로부터 물려받은 정통적인 신앙을 잘 유지하고, 보존하며, 관리 하는 것이다.
이 명칭은 오늘날 진보주의 신학사상과 자유주의 신학사상으로부터와 세속주의와 이성주의, 합리주의 사상으로부터 정통적인 신학사상을 잘 보존시키는 것을 말한다.
특히 현실적인 과제가 지금 당장 주어져 있고, 이 문제는 우리의 당면과제 이기도 하다. 즉 포스트모던시대에는 혼합주의가 팽배하고, 이단이 극단을 달리며 흥왕하는 시대에, 우리의 보수주의는 우리의 신학 사상을 잘 유지 발전시키고, 이를 후손에게 유산으로 잘 물려 주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의 반대 개념은 자유주의 신학사상에서 찾게 된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사상은 성경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받들지 않고, 보통의 책들과 같이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신학 사상이다. 이러한 것에서 떠나는 것이 보수주의 사상이다.
학교의 이념과 교육 목적은 표어/교가, 이념/목적, 목표/교훈에서 볼 수 있습니다.